잠도 자지 않고 이틀에 걸쳐 머릿 속에 담아 놨던 모든 아이디어를 쏟아낸 탓일까. ‘제2회 글로벌 이노베이터 페스타’에 참여한 참가자 대부분은 유독 지쳐 보였다. 한 몸 뉘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리 펴고 누워 휴식을,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너나할 것 없이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마인크래프트’에 혼이 나간 초등학생부터 시작해 아두이노에 관심 많은 성인까지 2천여명에 가까운 참가자들이 GIF에 모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창업 비법을 배워가는 시간을 가졌다.
영남권을 대표하는 ICT 경진대회인 GIF가 지난 11월3·4일 이틀에 걸쳐 대구 엑스코에서 열렸다. ‘Start Your Idea’라는 행사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세계 청년혁신가의 건강한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해커톤이 아니라 ‘페스타’라고 이름 붙인 이유입니다. 밤새 프로그래밍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사업 성과를 검토할 수 있는 자리를 한 공간에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GIF 행사를 기획한 양원영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ICT융합진흥팀 선임은 GIF를 계기로 이런 행사가 지방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동안 해커톤을 비롯해 각종 창업 대회는 주로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열렸다. 지방 참가자는 거리 또는 시간을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GIF는 지방에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경연을 단일 분야가 아닌 메이커톤, 아이디어톤, 오디션, 루키 등으로 나눠 이틀에 걸쳐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GIF 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경쟁력 있는 ICT 인재를 발굴하고, 청년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며 고용 기회를 창출할 기회의 장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경연은 연령과 주제에 따라 4가지 분야로 나눠 운영된다. 루키 분야는 ICT 꿈나무인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참여하는 분야다. 행사에 참여한 초·중등생은 ‘마인크래프트’, 3D 프린팅, 드론 등을 직접 설계하고 다뤄보면서 ICT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메이커톤은 제한 시간 내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출해 실용적인 기기를 제작하거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경연이다. 종목은 크게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디바이스, 커뮤니티 매핑 등으로 나뉜다.
IoT 분야에서는 대구 스마트시티 개발을 위한 사물인터넷 기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 행사 첫날인 3일에는 개발에 집중하고, 다음날엔 발표해야 한다. 약 80여명이 모여 대구 스마트시티 개발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스마트 디바이스 분야에서는 10대 융합분야와 연계된 스마트 디바이스를 직접 선보여야 한다. 실제로 디바이스를 만들어서 시현해야 한다. 아두이노와 라즈베리 파이 등을 활용한 팀들이 눈에 띄었다.
스마트 디바이스 분야에 참가한 ‘크리에이티브 톤’ 팀은 LED 케이스를 개발해 선보였다. 크리에이티브 톤은 전국적인 적정기술 기반 메이커 커뮤니티다. 이들은 “다른 메이커와 소통하기 위해서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커뮤니티 매핑은 재난과 생활 안전 개선을 위한 지도를 만들어서 발표한다. 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커뮤니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시민들이 지역 사회를 이해하고, 문제점과 잠재력을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공공정보 데이터 등을 활용해 기존 매핑 한계를 보완할 방법을 제안한 팀이 대부분이었다.
메이커톤이 무언가를 제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아이디어톤은 생각의 발상에 주목한 경연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아이디어톤은 아이디어와 마라톤을 합성한 단어로 제한 시간 안에 제시된 주제에 맞춰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정리하고 발표해야 한다.
참가자는 행사장에서 처음으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팀을 꾸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야 한다. 순발력과 창의성을 엿보는 자리다.
올해 아이디어톤에서 제시한 주제는 ICT 융복합 분야에서는 ‘스마트시티’, 소셜임팩트 분야에서는 ‘대구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해당 주제는 즉석에서 공개된다. 사전에 미리 주제가 공개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모든 참가자는 현장에서 주제를 보고 바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소셜임팩트 과제>
– 동대구보다 서대구가 각종 인프라가 부족한 대구의 지역 불평등 문제
– 대구의 주력산업인 섬유산업의 부진으로 경제성장을 이끌 전통적 동력이 부족
– 관광지가 크게 발전되어 있지 않아 관광 인구가 주변 지역의 경유지로 거쳐 감
– 염색공단의 악취문제와 대구의 분지 지형 특성상 미세먼지 유입 시 확산이 잘 안 되어 대두한 대기오염문제
– 매년 약 1만명이 순유출되고 있는 청년 유출문제
– 전국에서 2위를 기록한 성인 도박 문제
– ‘고담대구’라 불릴만큼 재난 안전에 대한 높은 위험 인식
중 택1. 복수도 가능
이번 소셜임팩트 분야에서 주어진 주제는 ‘대구가 가지고 있는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ICT 아이디어를 제시하세요’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엔 고민할 부분이 많은 주제가 나왔다. 모두 실제로 대구시에서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원영 선임은 “무언가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해커톤 행사보다는 아이디어도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여러 행사와 차별화해 소셜임팩트 분야를 만들어 경진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라며 “소셜임팩트는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를 묻고, 이를 실제 정책 제언까지 이어질 수 있게 지원할 계획”이라고 경연 배경을 설명했다.
공학도 4명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 1명이 서로 모여 자연스럽게 팀을 꾸리게 되면서 자동으로 팀 이름을 ‘헬로월드(Hello World)’로 지은 팀은 이번에 처음으로 소셜임팩트 분야에 참가했다.
헬로월드 팀은 “주어진 주제가 어려워서 고민을 많이 했다”라며 “섬유산업대신 발전할 산업으로 자동차 튜닝 사업이 어떨까 하는 차원에서 고민하고 발표를 준비했지만, 다른 팀이 너무 잘해서 수상이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GIF 행사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제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아이디어를 실제로 사업화할 수 있는 경영 자리도 함께 마련했다. 오디션 분야다. 오디션은 스타트업의 사업 계획을 살피는 서바이벌식 경연이 이뤄진다.
2년 이내 개인 또는 법인 사업자, 예비창업자 40팀 중심으로 경연을 펼치는 ‘디벨롭 혁신’과 2년 이상 7년 이내 개인 또는 법인 사업자 40팀을 대상으로 경연을 펼치는 ‘점프업 사업화’로 나뉘어 경연을 펼친다.
오디션은 벤처캐피털(VC)이나 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진흥원 등에서 나온 멘토들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검토한다. 각 멘토는 오디션에 참가한 팀의 사업성을 분석해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조언이나 기업 가치 개선방안 부분에 도움을 준다. 필요하면 VC에서 나서 투자자를 연결할 수 있게 돕는다. 그 외에 홍보 등 사업 판로 분야도 지원한다.
멘토링 중인 강창랑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기획본부 본부장
이날 경연에 멘토로 나선 강창랑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기획본부 본부장은 “이런 행사에 와보니 확실히 요즘 창업 아이템 대세가 IT, 모바일 앱에 집중된 것을 느낄 수 있다”라며 “아이디어 선에서 멈추지 말고 전체적인 사업 그림을 그려본 다음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참가하면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오디션 분야에 지원한 ‘시원컴퍼니’ 측은 특수교육기관을 위한 전사적자원관리(ERP)를 사업 아이템으로 들고 나왔다. 특수교육기관에서는 기존 ERP를 도입해 활용하기 너무 어렵고, 자체 개발해서 사용하기에 비용면에서 어려워 엑셀과 수기로 관리한다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원컴퍼니측은 “IR 피칭과 사업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이번 자리에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GIF 행사에서는 유독 외국인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번 행사엔 중국, 영국, 앙골라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도 경연에 참여해 다른 이들과 겨뤘다. 양원영 선임은 “유학생도 참석해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외국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라며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과 연계해 행사를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GIF는 각종 경연대회 외에도 기업가 정신, 고수와의 만남 ‘오픈소스 레드햇’, ‘쫄지말고 투자하라 – 시즌5 토크쇼’ 등 다양한 강연도 준비했다.
이 행사는 대구광역시가 주최하고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관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대구광역시교육청, 커뮤니티 매핑센터 등이 후원했다.
총상금은 9600만원이다. 루키 분야 마인크래프트, 드론, 3D프린팅 종목에서 각 총 500만원을 지급한다. 메이커톤 분야 IoT, 커뮤니티 매핑 종목은 각 총 1150만원, 스마트 디바이스는 600만원을 시상한다. 아이디어톤 분야 ICT 융복합, 소셜임팩트 종목은 각 총 1천만원, 오디션 분야 스타트업 디벨롭 혁신 종목, 스타트업 점프업 사업화 종목은 각 총 1500만원에 이르는 상금을 수여한다.